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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창고/국내외 사건, 사고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

by 2centi 202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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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건, 사고로 1971년 발생했던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사건은 1971년 12월 25일에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동에 위치하고 있는 대연각 호텔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최악의 화재 사고로

대연각 호텔의 위치는 현재 고려대 연각타워 입니다.

 

재난영화 ' 타워 '가 '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 ' 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라고 하죠.

 

 

세계 최대의 화재 사고들 중 하나이자

호텔 화재 중에서는 최대 사고로

총 사망자 166명 ( 추락사 38명 ), 부상자 68명, 실종 25명이 나왔습니다.

 

 

 

날짜를 보시면 아시다시피 12월 25일,

사건 당일은 크리스마스 였기 때문에 호텔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 대연각 화재 사건 ' 의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면,

당일 오전 9시 50분경 대연각 호텔 1층의 커피숍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이 원인은 프로판 가스 폭발이었습니다.

( 당시는 LP 가스 사용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시기 입니다. )

 

* 프로판가스 ( Propane gas ) 란

프로판을 주성분으로 하는 메탄계의 액화 수소 가스로

유독한 일산화탄소가 있는 석탄가스와 다르게 중독의 위험이 없어

가정 연료로 쓰이나 공기보다 1.5배 무거워 새어 나오는 가스에 인화하면 폭발 위험이 있습니다.

 

 

커피숍 카운터에는 프로판 가스 화덕이 있었는데,

사고 당일에는 예비용 20kg 짜리 프로판 가스통이 하나 더 있었고,

사고는 예비 용기의 가스를 잘못 방출시켰거나

가스가 샌 상태에서 화덕으로부터 가스에 불이 옮겨 붙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프로판 가스 폭발로 불길이 시작되자마자 불길이 계단을 막아버려

사람들이 내려오지 못했으며, 한 시간 반만에 21층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불이 1시간 반 만에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일 정도로 빨리 번진 이유는

대연각 호텔 건물 내장재가 온통 가연성 물질로 가득했기 때문인데,

예로 벽은 한지를, 인테리어는 목재를 많이 이용했고, 객실 문 또한 목재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옥상에는 헬리포트 ( 헬리콥터 발착을 위한 비행장 ) 가 없어 헬기 구조도 어려운데,

옥상으로 통하는 문도 잠겨있었고,

 

빌딩 내부의 계단은 방화문이 없는 개방형에

엘리베이터는 불이나자 그대로 멈춰버렸고,

옥외 비상구나 비상 계단도 별도로 없었으며 스프링클러와 같은 소화장비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가 사다리차는 8층 높이까지만 도달할 수 있었기에

그 이상의 고층 투숙객들의 구조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전대통령까지 현장에 나와 화재진압을 독려하였지만,

수많은 투숙객들이 유독가스와 열기를 이기지 못해 창밖으로 뛰어내리기도 했는데,

이 모습이 TV 생중계로 보도되어 커다란 충격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연각 호텔 주변에는 5층 내외의 낮은 건물들이 바짝 붙어있어

그나마 낮은 층에 있던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리거나

커튼, 침대 시트 등을 뜯어 줄을 만들어 타고 내려오기도 했는데,

 

21층이었던 대연각 호텔은 당시 국내에서 보기 드문 고층 건물이었고,

화재로 인해 사람들이 고립된 위치는 6층 이상 부터였기 때문에

 

 

위와 같이 옆건물로 뛰거나, 줄을 만들어 내려오는 등 외에도 침대 매트리스를 안고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는데,

이들 중 생존자가 있기는 했지만, 사망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건물 주변에는 추락사한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린 사람들도 옥상으로 통하는 비상구가 대부분 잠겨있어

화재 진화 후 옆 건물 옥상 출입구에서 20여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은 가까운 소방서와의 거리가 700m 정도라

소방서 초기 출동을 매우 빨랐으며

소방관 528명, 의용 소방대원 113명, 경찰 750명, 구청 직원 400명, 군인 115명, 의료반원 30명,

마 8군 소방대도 출동해 화재 진압에 동원되었지만,

 

화재 규모도 크고, 고층까지 구조 등도 어려워

화재 완전 진압까지는 7시간,

남아있는 열기로 인해 시체 발굴 및 수습에는 18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추가로 이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이 있던 자리는

1947년 서울 만물전 ( 구 히라다 백화점 ), 1959년 고미파 캬바레로

미히 화재를 2번 겪은 전력이 있었던 터였으며

 

 

대연각 호텔은 지은지 1년 6개월 밖에 안 되는 신축건물이었고,

소방서 추정으로 당시 재산피해는 약 8억 3,820만원 이었다고 합니다.

( 1971년 당시와 현재 금전의 가치는 차이가 나겠죠? )

 

그리고 당시 이 사건에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모두 쏠려 있던 12월 27일 새벽 3시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이 ' 국가 보위에 관한 특별 조치법 ' ( 국보법 ) 을 통과 시켜

재난을 이용해 독재체제를 강화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대연각을 한자로 쓰면, 大然閣인데,

대연 ( 大燃, 크게 불사르다 ), 대연 ( 大煙, 큰 연기 ) 와 같은 음이라

' 화재를 부르는 이름으로 지은 게 화근이었다! ' 라는 블랙 유머도 성행했다고 합니다.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 이후,

모든 대형 건물이 화재 진압 시스템 ' 스프링쿨러 ' 의무 설치,

고층 건물 옥상 헬리패드 확보가 법률로 의무화되어 시행되었습니다.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 당시,

서울 인구는 지난 10년간의 2배로 증가하여 550만명 이상이었고,

이에 따라 고층건물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어

90개 이상의 고층건물이 이를 정도로 급팽창 중이었는데,

 

이러한 도시 급팽창에 맞추어 고층빌딩이 늘어갈 뿐,

그에 걸맞은 안전대책과 시설은 부족한 상황이었고,

대연각 호텔도 안전을 보장할 시설과 대책은 극히 미비한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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