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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포스팅에서 홍차와 홍차의 효능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번엔 홍차의 어원과 홍차의 기원, 유래 및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홍차의 어원은 19세기 중엽부터 홍차를 생산하여 수출하려 했던 일본인이

자국내의 녹차는 일본차로 부르고, 유럽인이 마시는 차는 붉은빛을 띤다고 하여 홍차로 부르던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며

 

 

 

홍차의 영어인 black tea (블랙티) 어원에는 여러 설이 많은데,

대표적인 설이 우롱차보다 더 발효된 홍차가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았고,

녹차와 우롱차의 차이를 설명하는 통역 과정을 거치면서 영어 ' black tea '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홍차의 기원에서 언급될 인도의 녹찻잎을 이용하여 생산한 홍차는 그 색이 진한 갈색빛을 띠고 있어

' black tea ' 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유럽식 홍차의 기원은 16세기 중엽 중국에서 유래되었고,

중국의 차가 유럽으로 처음 들어간 것은 1610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해서 였습니다.

또한, 1662년 찰스 2세가 포르투갈에서 온 캐서린 왕비와 결혼하면서 영국에도 차 문화가 전해지게 되었죠.

영국에서 차는 폭발적인 인기로 18세기 초 차의 최대 소비국가는 영국이 될 정도였습니다.

 

 

 

녹차를 마시는 중국의 문화가 유럽에 전해지면서

동양의 신비스러움, 중국에서 건너오는 비싼 물품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유럽 귀족과 부유층 사이에 녹차는 떠오르는 키워드로 등극하게 되었고,

중국의 도자기에 중국산 녹차를 마시는 것은 새로운 부유층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후에 녹차가 동인도회사에 의해 영국으로 수입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동양의 특징과 과시욕이 겹쳐져 영국 상류층에 녹차 문화가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녹차는 고가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녹차에 대한 수요가 계속되면서 후에 영국이 무역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아편을 중국에 수출하여 비용을 충당하였습니다.

 

 

 

이는 추후에 ' 아편전쟁 '으로 발전하였고,

미국독립전쟁의 도화선인 ' 보스턴차사건 '도 중국산 차로 인해 발생한 사건입니다.

 

영국은 중국산 차 중에서도 우롱차에 매력을 느꼈는데,

녹차의 생산기술을 알고 있어도 우롱차에 관련된 정보를 알 수 없었지만

후에 영국인들은 중국의 녹차재배기술 및 우롱차 생산 기술을 알게되었습니다.

 

 

영국은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녹차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방법도 모색하려 했으나

인도의 녹차는 중국산에 비해 맛이 없었고, 저품질이라 흥미가 없었는데,

이 인도산 녹차를 이용하여 발효를 시킨 후 홍차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홍차는 중국산 우롱차보다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으며

당시 남미에서 생산된 설탕을 타서 마시면 더 맛이 좋아

비싼 홍차에 비싼 설탕을 넣어 과자와 함께 먹는 귀족들의 티타임이 생기고, 영국에서 유행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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